2016 메모: 강령술
오은
지난 약 40년에 걸쳐, 과거의 것들을 공격적으로, 전복적 의미로서 사용했던 방법론들이 남긴 성취는 크다. 그러나 사회문화의 잠재적 가능성이 서서히 사라지고, 성장 동력마저 사라져 가는 바로 지금의 상황에서, 반복되는 전유와 해체의 전략들은 이제 그 힘을 완전히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웹 3.0, 포스트 인터넷 등을 논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한때 ‘인용의 조직체’, ‘궁극의 리스트’ 등으로 표상되고 점유되었던 먼 과거와 그를 통해 구성된 근과거는, 2010년대의 시점에선 모두 실체 없이 부유하는 증기-데이터 신세가 되어 이제 실재와 완전히 싱크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술작품은, 역시 그 데이터들처럼 공허로 흩날릴 뿐 과거에 행했던 어떤 기능-권능들을 모두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대응하는 작업방식이란 어떤 것일까?
바스러지는 현재 속에서 어떤 이들은, 스스로 일종의 넝마주이이자 순례자가 되려고 한다. 그를 통해 끝나버린 한 시대를, 어떤 황금기를 역사화하고, 흩날리는 지금을 붙잡고자 하는 것이다. 이들은 가상적 잔해들 사이에서, 즉 레티나 스크린에 출력된 폐허의 이미지-데이터들로부터 쓸만한 것들을 긁어모으는 넝마주이이다.
하지만 그 넝마주이는 고결한 순례자이기도 하다. 주워모은 잔해들 속에서 유물들을 찾아내고자 그들은 위대했던 과거로 순례를 떠난다. 나는 그들 중 하나이고 싶고, 내 작업은 그렇게 발견한 유물들을 재료로, 이 괴상한 시대의 물신을 제작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면 좋겠다.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은 과거를 박제하고 숭배하는 물신이라기 보다는 유물들을 사용해 자신을 방어하는 일종의 강령술에 가깝다. 과연 이러한 실천은, 정말로 ‘오늘’을 확보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지속적인 실험을 통해 이를 가늠해 보려는 것이 현재 나의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