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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오늘날 예술 창작 환경은 내외적 상황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첫째로 새로운 미디어 환경은 세상을 ‘보는 방법’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사용자 환경에 삽입되는 알고리즘 기반의 시뮬레이션은 그 자체로 너무나 얇고 평평하여 시각성 자체를 역전시키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그 기반은 (지나간 시간을 땔감 삼아) 과거를 재사용하며 연명하기에, 오늘의 자리를 점차 비좁게 만들고 있다. 미술의 오랜 전통에 따라,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일종의 대격변 앞에 현대미술의 전략들은 일순 고루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br/><br/>

 이에 더하여 미술 창작의 동기, 출발점들 또한 다원화를 넘어 불안정한 상태가 된 것 같다. 시대성은 변화하고 있지만 각 방법들을 대별하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포화상태다. 때로는 모든 것이 가능하고, 무한한 경로들이 주어진, 한없이 긍정적인 환경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모든 전략들이 소모되어 무엇을 해도 새롭지 않은, 공회전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새로움’ 이나 ‘미래’ 를 논하려는 것 자체를 잘못된 방향으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진퇴양난 아래서, 과연 어떠한 창작 방법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br/><br/>

 나는 앞으로의 작업을 통해 그 해답을 찾는 과정을 그려보고자 한다. 회화와 조각이라는 규칙아래, 유의미한 창작방법에 대한 고민을 지속해 나가려는 것이다. 내 여정의 큰 변수가 있다면 미술사적 과거를 적극적으로 참조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특정 작품으로부터 출발하기도 하고, 특정 시기로 부터 출발하기도 하는 등 여러 방법을 취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요즈음의 결과물은 오마주(hommage)와 전유(appropriation) 사이의 작은 틈을 향하고 있는 모양새다. 단순한 오마주 도 아니고 공격적 전유도 아닌 어떤 참조적 방향성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br/><br/>

 이러한 방향성이 창작의 내외적 위기 상황에 모두 대응할 수 있을까? 지나간 시간이 미디어를 타고 흐르며 오늘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 과거를 또다시 재료로 삼아 그저 유희하는 것 처럼 보일 우려는 충분히 있다. 그러나 성찰적 자세로 과거를 세밀하게 돌아본다면 오히려 그것을 무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창작의 완전한 자유 속에서 어떠한 방향을 선택하든 자의적이 될 수 밖에 없다면, 미술 그 자체, 미술사로 돌아가는 것도 한 방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과거를 참조하는 접근법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태도와 경유 지점을 명확히 설정한다면 바늘구멍을 통과하듯 미래를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