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메모: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오은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은 14점의 회화와 17점의 조각 습작들로 이루어진 오은의 개인전이다. 출품된 작품들은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서 혼란스러운 양상인데, 자세히 보면 우리 미술사의 특정 순간순간들을 지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순간들은 성취의 순간들이기도 하지만 논란 혹은 파탄의 순간들이기도 하며, 일부는 오늘의 시간까지도 봉합되지 못한 상처의 순간들이기도 하다. 나는 이번 전시에서 이렇게 뒤엉킨 순간순간들을 견습생의 눈으로, 마치 자화상 습작을 그리듯이 하나하나 렌더링해 보려고 하였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은 각각 근대기와 해방기에 왕성히 활동하였던 고희동과 이쾌대의 자화상 작품 제목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 둘은 각각의 시간대에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고뇌를,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의 자화상으로 표현해 보려 하였다. 여기서 ‘두루마기’를 입었다는 점이 나에겐 의미심장하게 여겨졌는데, 이것이 우리 미술에 있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는 여러가지 문제들, ‘어떤 굴레’들을 지시하는 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 굴레가 바로 시간을 거듭하면서 ‘향토’, ‘고(古)’, ‘원형’, ‘민족’, ‘전통’ 등 다양한 이름으로 호명되며, 반복적으로 이 땅의 미술가들을 사로잡아왔던 무엇이 아닐까? 나는 이번 전시를 통해 바로 이 굴레들을 다뤄보고 싶었다. 그것을 뭐라고 부르건 아시아의 미술가이자 한국의 미술가로서 쉽사리 벗어던질 수 없는 것으로서 계속해서 갱신되며 속박해오는 굴레를 말이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 미술사를 전체적으로, 그러니까 ‘통째로’ 바라보려 했다. 이런 짓은 소규모 개인전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넘어서는 것인데다, 어쩌면 불가능한 짓 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보는 ‘오늘’의 풍경을, 우리 미술사의 부분들을 최대한 소환함으로써 펼쳐 보이고자 했다. 이에 따라, 각 작업을 진행할 때는 혹시라도 깃들지 모를, 이제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어떤 정신성을 시뮬레이션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되 원전의 과정이나 물성을 그대로 복제 하는 것은 피했다. 이러한 고군분투를 통해 탄생한 작품들의 군집이 어쩌면 오늘에 대한 하나의 자화상이 되길 희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