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메모: 다름
오은
현대미술이 하나의 컨벤션인 이상, 계속해서 이어지는 무엇인 이상, 다름을 위한 다름은 정말 나쁜 것일 뿐일까? 시간축의 어느 특이점, 혹은 임계점 이후로 '현대미술' 은 정말로 자가발생적인 무언가가 되었는데..
예를들어 앵포르멜이 그 모습으로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대에 어떤 추진력, 즉 깃드는 것이 형성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때때 마다 어떤 시대정신, 시간성 같은 것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지금은, 앵포르멜적인 격정적 표현을 해놓고, 그것을 전쟁의 상흔에 대한 폭력적 표현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제 제시된 그 어떤 것에도 적절한 깃드는 것이 없다. 작가가 뭘 만들어놓고 이게 뭐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건 뭘 주워왔을 때 뿐이다.
만약 인상주의를 참조한 풍경화를 그리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리고 그 작품이 지금의 미술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지라도 무가치한 것은 아니라면? 과다하게 평평한 / 민주적인 / 고루한 / 절대적으로 상대적인 시각을 배제했을때 예술가가 그리는, 만드는 무언가가 어떤 것임을 주장하기 위해서 다름을 위한 다름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때 '다름'에 대해서 역사적인 여러 시점을 종합적으로 숙고해 본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