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메모: 조각사의 의문들


오은


 조각과 회화는 미술의 주된 두 미디엄 분야이지만, 사실 연동될 뿐 전혀 별도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입체주의를 예로, 미래주의와 견주면서 생각해보면 확실해진다. 왜 입체주의는 조각이 되지 않았을까? 왜 피카소는 완전한 조각에서는 우상적인/토템적인 것을 주제로 삼고, 정작 입체주의 문제의식의 극점이라고 할 수있는 방향은 레디메이드 꼴라주로 나아갔을까? 생각해보면 다중시적 지각-인식 자체를 구현해보고자 한 입체주의에게 완전한 3D 형상/사물이라는건 애초에 그 문제의식의 출발점이기도 하기에, 굳이 조각으로 귀결될 이유는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실제하는 것을 지각-인식하는 특정 방법을 평면적으로 구현-제시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결과물이 실제 자체가 되버리면 방향이 틀어지기 때문에..

 또 ‘인상주의 조각’ 이란것은 왜 없는가 를 생각해 봐도 좋겠다. 왜냐하면 ‘인상주의적 조각’ 이랄 것들은 있지만, ‘인상주의 조각’ 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부피를 가지는 조각의 특성상 제작시 다시점에서 볼 수밖에 없고, 이는 인상주의의 핵심중 하나인 ‘망막적’ 현상을 구현 불가능하게 한다.(그러니까 굳이 보치오니를 말할 것도 없이 조각은 모두 미래주의적이다?-물론 보치오니를 포함한 20세기 초반의 다수는 생각보다 정면성을 중시했다.) 하지만, 인상주의를 ‘촉지적 시각’에 중점을 두어 생각해본다면,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또 가능한 문제이기도 하다. 어쨌든, 다각도로 접근해보면 (최소한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 회화는 좀 더 인식과 관련되어왔고, 조각은 좀 더 지각과 관련되어 왔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미술사에서 조각은 언제나 회화의 하위 분과였기 때문에, 조각의 그러한 지각적 특성 자체를 부각하는 방법론은 그다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제작에 돈이 많이 든다는 특성 또한 이에 일조 했을 것이다.

 그런데, 미니멀리즘 시기 이후 조각은 재료의 물성 자체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이것이 곧 지각적 효과를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이는 반은 맞는 말이고, 반은 틀린 말인 것 같다. 왜냐하면 회화가 결국 사물-조각이 되어버린 미니멀, 포스트미니멀에서조차, ‘조각’ 이라는 문제의식이 주가 되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상 미니멀리즘이 당도한 곳은 회화, 평면성에서 출발한 환원논리의 극단이었기 때문에, 회화가 ‘조각화(사물화)’ 된 것이지, ‘조각’ 자체가 문제적 지점을 회복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는 데이비드 스미스, 앤써니 카로 등을 봐도 명백하다) 미니멀리즘 미술가들을 ‘조각가’ 라고 칭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들을 ‘화가’ 라고 칭할 수도 없겠지만, 그 출발점이 무슨 조각분야의 새로운 가능성 같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는 당시 ‘조각가’ 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나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주로 언급되는 앤서니 카로, 데이빗 스미스 같은 인물들은 환원성의 논리와 유사한 조각을 ‘발명’ 하려 하고 있었고, 영국에서는 형태적으로는 미니멀 할지 몰라도 미니멀리즘과는 무관한 형식이 실험되고 있었다. 어쩌면, 앵포르멜이야말로, 조각의 지각적 성격과 가장 잘 맞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앵포르멜 또한 ‘앵포르멜 조각’ 이 번성하지는 못하였다.. 이는 왜일까? 어떤 현상학적 에너지의 장이 될 만한 ‘바탕’ 혹은 ‘지지체’가 없었기 때문일까?

 그러니까 조각 분야에서는 아직 모더니즘의 실험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볼 수 도 있다. 여기서부터 출발할 수도 있겠는데.. 근데 전통적으로 생각해보면, 형식은 그렇다 치고, 내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앵포르멜이 어떤 참상적 세계인식과 그에 바탕을둔 자의식을 ‘표현’하려고 했다면.. 그럼 좀더 조각 자체적인 모더니즘을 전개해보려한다면.. 또다시 환원적이 되어야할까?

 회화가 ‘환원적’으로 된 건 당시까지의 회화의 속성과 문제를 재현성에서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회화의 하위분과로서의 조각’ 이라는 문제는 잠시 젖혀둔다면, 조각의 문제는 ‘기념비성’이 될까? 아니면 … 자율적으로 조각을 한 사례.. 순수한 추동으로서… 그니까 ‘조각이 좋아서요’ 같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