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메모: 명량


오은


 궁지에 몰린 예술은 어떤 모습일까? 이번 작업을 준비하면서 나는 계속해서 사면초가에 빠진 예술에 대해 생각했다. 나아가지도 못하고 돌아가지도 못하는 상황의 예술, 미술에 대해 생각할수록 자꾸만 배수진을 치고 전투에 임하는 장수들이 떠올랐다. 2020년이라는 괴상한 해에 우리는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무엇이 최선일까? 나는 계속해서 전쟁사에만 관심이 갔다.

 흔히 ‘최전선’에 비유되곤 하는 예술의 어떤 접촉면에선 아직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기는 한 걸까? 전쟁으로 치자면 우리는 완전히 포위되어 형세가 기울대로 기운 모양새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형국을 돌파해낸 사례가 전쟁사에는 실제로 꽤 있지 않은가. 나는 가장 먼저 명량을 떠올렸다. 신화처럼 전해 내려오는 전투이자 실제로도 정말 신화에 가까운 승전, 거기다 조국의 이순신 숭배까지 곁들여 완성되는 완벽한 K-해전. 예술가들에게도 이런 드라마틱한 승전이 가능하지 않을까? 되도 않는 생각을 반복하다 보니 목 밑에서는 자꾸만 의문부호로 끝나는 문장들이 맴돌았다.

 나는 2020년의 시작과 함께 강령술(降靈術,necromancy)에 비유되는 작업 방법을 실험해보고자 했었다. 영혼을 불러온다는 저 말의 뜻에 걸맞게 그동안 진행해왔던 과거 참조형 작업들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고, 나아가 강령술적 방법이라는 작업 모델 또한 구축해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를 둘러싼 상황의 배치가 점점 불길하게 변해갔다. 전례 없는 상황에 놓인 인류에게 대체로 괴상히 보이는 현대예술 같은 것이 필요키나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스갯소리로 하던 앞날이 캄캄하다는 말이 어느 순간 체감되기 시작했다. 2020년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정말로 예측불가의 시대를 맞지 않았는가?

 여기서부터, 궁지에 몰린 예술의 모습을 계속해서 생각했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달리 없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더해진 고민, 작업을 그만두거나 그만두지 않거나 하는 선택에서는 가까스로 후자를 택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이상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그냥 명량 대첩에서 승리한 이순신을 떠올리면서 임했다는 설명이 최선일 것 같다.

 그렇지만 이래저래 많이 틀어지긴 했어도, 연초에 떠올린 방향에서 크게 선회한 것도 아니었다. 되려 처음에는 강령술이라는 용어를 비유로나 써먹으려했지만 이제는 진짜 강령술사가 된 느낌이다. 우리 미술사의 몇몇 페이지를 들추고 하염없이 도판이나 보다 보면 그냥 강령술 마법책여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이번에 55-65년 앵포르멜 시기를 (또) 들여다보다 보니, 더욱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내뿜는 힘 같은 것이 크게 다가왔다.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결국 미래에 대한 작은 확신일까? 나에게 이제 남은 것은 이제 이것들을 가지고 전선에 나가는 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