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메모: 수력발전


오은


 미술이 일종의 수력발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상하, 고저, 좋고 나쁨, 옳고 그름 같은 비교 판단에 근거하는, 근대 이래의 발명이 현대미술까지 이어진 끝에 수력발전 자체가 되어버린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런데 수력발전처럼 돌아가는 것 자체는 그냥저냥 괜찮고 자연스러웠는데, 역 낙차를 이용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뒤부터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뭐 저질 이미지 같은 것들에 의미부여해서 쓰는 그런 상황이 대표적인데, 전통적인 판단 방식에 비춰보면 푸어한 이미지는 본디 하, 저, 나쁨, 그름에 해당하는 것들인데 이를 역으로 이용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낙차를 상정하는 그런 방법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부자연스러운 짓이다 보니, 어느정도 동역학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해를 발생시키게 된다. 나름 정교하게 설계된 접근인 셈인데, 뭐든 본래 낮은 것들에 의미부여만 하면 역낙차가 생기는 줄로 착각하는 이들이 넘쳐나게 되버린 것이다

 그 결과는? 에너지의 소멸이다. 에너지 보존 법칙을 거스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발전에 사용가능한 잠재적인 에너지들이 모두 소멸되는 것이다. 위에 있는 것을 내리는 것과 아래에 있는 것을 올리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엄밀히 다른 일이다. 더 이상 끌어내릴 윗물이 없으니, 가상적으로 아래에 있는 물을 ‘끌어올린’다. 이런 상정은 에너지를 소멸시키고 뒤틀린 계를 낳는다

 왜 그렇게 되고 말까? 이렇게 탄생한 결과물 역시 고저, 옳고 그름, 미추에 의한 판단을 피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가정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동적 공간을 설계한들, 결국 기본세팅은 변하기 힘들고 인간 정신은 대충 거기까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현대예술가는, 안 돌아버리면 그냥 다행인 것이다

 사실 옛날 옛적에 이런 문제를 예견했었던 것 같은데? 유토피아 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던 텍토닉 같은 거 말이다. 근데 그런건 이미 끝장나 버렸다는 사실은 자명하고, 우리는 간신히 생명연장 시도 중이다. 시도를 거듭하다가, 어느새 ‘먹고는 살아야지’ 라는 상태에 다다르고 관성으로 표류하게 되는, 표리부동 예술가.